간토대지진 희생자 이야기 '엿장수 구학영' 출간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 구학영 씨의 이야기를 담은 '엿장수 구학영'이 최근 출됐다. [기억의 서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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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1923년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대량 학살된 조선인 가운데 유일하게 묘비에 이름·고향주소·나이가 새겨있는 구학영 씨의 이야기를 담은 '엿장수 구학영'(기억의 서가)이 최근 출간됐다.
간토대지진 학살사건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한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져 자경단, 경찰, 군인에 의해 재일 조선인 6천661명(독립신문 기록)이 희생된 참사다.
당시 28세의 청년 구학영은 사이타마(崎玉)현에서 엿장수로 살다가 희생됐다.
작가인 김종수 1923 한일재일시민연대 대표는 "그의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보호하려고 애썼던 일본인의 선행도 함께 알리려고 집필했다"고 소개했다.
사이타마 소재 쇼수인(正壽院)에 안장된 구학영 묘지에는 '조선 경남 울산군 상면 산전리 속명 구학영, 향년 28세, 1923년 9월 6일 사망'이라고 적혀 있다.
묘비 건립자는 미야자와 기쿠지로(宮澤菊次郞) 외 마을 사람들로 돼 있다. 도쿄니치니치신문은 1923년 10월 21일 자 기사에서 구 씨가 당시 습격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에 몸을 숨겼으나 이웃 마을 자경단이 난입해 밖으로 끌어내 이들의 칼과 창에 찔려 무참히 살해당했다며 온몸에 62군데의 치명상이 남아 있었다고 보도했다.
구 씨는 자경단에 끌려가기 전 유치장 벽에 자신의 피로 '벌(罰), 일본, 죄무(罪無)'라고 적었다. '일본인, 죄 없는 사람을 벌하다'라는 의미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구학영 묘비
간토대지진 희생자로 사이타마현 쇼수인 묘지에 안장된 구학영 씨 묘비. [김종수 제공]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진상 규명에 앞장서 온 김 씨는 2008년 묘비를 방문한 후 관련 자료를 모으고 묘비에 나온 주소지의 유가족을 찾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는 "일본 정부는 학살에 가장 많이 관여한 것은 자경단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렇지만 당시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경단을 만들라고 명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온 대다수의 조선인이 그랬듯이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하지 못했던 구 씨는 엿장수를 하며 맹인 안마사였던 미야자와 기쿠지로와는 우정을 나누고 마을 사람들과도 친하게 지냈지만 끝내 희생됐다"며 "구 씨의 유해를 수습한 기쿠지로와 그를 지켜려던 경찰서장 그리고 묘비를 만들어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는 "희생자 유가족이 나서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진실규명과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찾은 유족이 10여명에 불과하다"며 "구 씨 묘비에 적힌 주소로 가봤지만 유족을 만나지 못했다. 제대로 알아보려면 족보를 뒤져야 하는데 정보 보호법 때문에 민간단체가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6일 충남 아산시 소셜캠퍼스온 충남 5층 이벤트홀에서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엿장수 구학영 출간 북토크'를 개최한다. 책에 삽화를 넣은 한지영 그림작가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연구해온 학자 등이 참석한다.
그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희생자의 유족이 생존하고 있으므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며 "순회 북콘서트를 열어 진실을 알리는 데 계속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wakaru@yna.co.kr 강성철 기자